이 글은 한경 긱스의 '그래서 투자했다'에 기고한 글입니다. 그래서 투자했다에서는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심사역이 발굴한 스타트업과 투자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유합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의 막이 올랐다. 그간 오픈AI를 비롯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에 주력해 왔고, 최근 챗GPT의 등장으로 대중에 큰 충격을 준 이후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생성형 AI 모델에 대한 관심은 오픈AI가 2020년 GPT-3 모델을 공개하면서 촉발됐다. GPT-3 모델은 기존 언어 모델에 비해 높은 범용성과 확장성을 가지고 있었고, 곧이어 이미지를 생성하는 Dall-E, Stable Diffusion과 같은 멀티모달 모델이 공개되며 더 많은 연구자와 기업들이 생성형 AI 개발에 뛰어들었다.
미국에서는 생성형 AI 모델을 활용해 발빠르게 서비스를 개발한 기업들이 유니콘에 등극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미국 회사 재스퍼는 GPT-3를 기반으로 카피라이팅 등의 언어 생성을 지원하는 서비스다. 출시 후 단숨에 5만명의 유료 사용자를 확보했다, 지난해 15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1700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한국에서도 자체적으로 생성형 AI 모델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네이버는 2021년 한국어에 특화된 생성형 AI 모델인 하이퍼클로바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카카오, LG, SKT, KT 등이 자체적인 생성형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는 뤼튼테크놀로지스가 있다.
학술대회 창시자, 미식축구광과의 첫 만남
남다른 비전과 실행력을 갖춘 학생 창업팀이었던 뤼튼테크놀로지스와의 첫 만남은 2021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한국에서는 생성형 AI가 지금처럼 주목받기 전이었고, 뤼튼테크놀로지스 역시 법인 설립 전 가설 검증 단계였다. 당시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파트너는 IT업계 지인으로부터 초기 기업 한 팀을 소개받고 투자 검토를 하고 있었다. 동시에 소개받은 동일한 팀이 매쉬업엔젤스에서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 상담 프로그램 ‘매쉬업 상담소’에도 신청했다는 것을 알게됐고, 미팅을 가졌다. 그 팀이 뤼튼테크놀로지스였다.
최근 이세영 뤼튼테크놀로지스 대표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인데, 법인 설립 직전 초기 투자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투자사와 IR 방법에 대해서 주변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조언을 구하러 다니는 중 대다수가 매쉬업엔젤스와 핏이 잘 맞을 것 같다며 추천해줬다고 했다. 이 대표는 주변 조언을 듣고 매쉬업엔젤스와의 미팅을 위해 지인 추천과 매쉬업 상담소 프로그램을 이용했다고 회상했다. 매쉬업엔젤스는 선배 창업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 창업자에게 전달하자는 'Pay it Forward'의 비전을 가진 투자사다. 아직은 부족함이 많을 수 있는 초기 창업자의 동행자가 돼 사업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하며 성장을 돕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긴다. 초기 창업자는 완벽할 수 없다. 그렇기에 초기 창업팀에 대한 투자를 검토할 때에는 창업팀의 비전과 실행력, 그리고 학습능력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그런 점에서 2021년의 학생 창업팀 뤼튼테크놀로지스, 그리고 이세영 대표는 무척 매력적이었다.이세영 대표는 정말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연세대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했고,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7세에 한국 청소년 학술대회(KSCY)를 설립해 8년 간 20회 이상의 대회를 개최하며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성장시킨 경험이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 미식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도전 골든벨 우승자 등 어느 하나 흔히 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 공존하기는 더욱 어려워 보이는 이력들이 모여 있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이세영 대표는 이런 이력을 증명하듯 단단한 체구와 부드러운 표정, 차분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가 인상적인 창업가였다.
뤼튼테크놀로지스의 창업 초기 아이템은 'Z세대를 위한 교육용 문서 작성 도구'였다. 첫 미팅 당시 이세영 대표는 “KSCY 학술대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글쓰기 능력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파악하며 글쓰기 교육의 필요성을 깊이 느끼게 됐다”며 “직접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인지했고, 글쓰기 수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교육용 SaaS 도구와 AI 기술을 통해 현 교육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포부를 말했다. 오랜 기간 학술대회를 함께 운영해 온 팀워크, 이미 검증된 행동력과 학습능력,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이고 명확한 비전 등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우리가 원하는 ‘좋은 창업팀’의 구성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물론 글쓰기 교육이라는 아이템만으로는 사업모델의 스케일업 가능성에 다소 한계가 느껴진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 팀이라면 사업 진행 과정에서 비즈니스 영역까지도 충분히 확장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 투자를 진행하게 됐다.
확장성 잡고 쾌속 성장
당시 생성형 AI가 주목을 받기 이전이었지만 이미 매쉬업엔젤스에서는 스캐터랩, 옴니어스, 라이언로켓, 비블 등 AI 분야의 스타트업에 큰 관심을 두고 지속적인 투자를 한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뤼튼테크놀로지스에도 성장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투자를 단행할 수 있었다.
투자 후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정식 솔루션 출시와 함께 여러 교육기관과 협의를 진행하며 교육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더불어 제품 고도화를 위해 한국어에 특화된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와 연계해 생성형 AI 기반 솔루션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글쓰기’가 필요한 더 넓은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 시작은 카피라이팅이었다. 카피라이팅은 생성형 AI가 완성도 높게 수행할 수 있는 일이었고, 이미 미국 시장에서 검증된 아이템이기도 했다. 매쉬업엔젤스에서도 뤼튼테크놀로지스의 숙제인 확장성을 해결하고,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유의미한 도전이라 생각해 피벗을 응원했다.뤼튼 카피라이팅은 베타 출시 전부터 대기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카피라이팅을 포함한 수십 가지의 툴을 제공하는 AI 카피라이팅 서비스 ‘뤼튼 1.0' 오픈 베타 서비스를 출시했다. 뤼튼은 출시 후 1개월 만에 약 3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했고, 2개월 만에 10억 개의 단어를 생성해냈다. 폭발적인 반응과 유의미한 규모의 시장성을 다시 한번 검증했고 이는 38억원의 프리 시리즈A 투자 유치로 이어졌다. 뤼튼은 생성형 AI 활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도 쉽게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용자들이 직접 AI 툴을 개발하고 배포할 수 있도록 해 툴 개발자와 수익을 공유, 선순환이 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생성형 AI를 바탕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하는 플랫폼인 '뤼튼 플러그인' 공개를 앞두고 있다.
생성형 AI 관련 시장 전망이 밝다는 것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생성형 AI 시장 규모는 지난해 101억달러(약 13조 원)에서 연평균 35.6% 성장해 2030년에는 1093억달러(약 142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다양한 서비스 분야까지 확장해 생각한다면 전체 시장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뤼튼이 당장 타깃으로 삼는 한국과 일본의 비즈니스 글쓰기 시장만으로 산정해도 최대 수십조원의 잠재적 시장 규모가 추산된다.이처럼 생성형 AI의 가치는 단순히 시장 규모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생성 AI 기술은 무한한 확장성을 가지고 있으며, 마치 과거 많은 스타트업들을 탄생시켰던 인터넷과 모바일처럼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 스타트업들이 생겨날 토양이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투자자로서는 이런 기술의 동향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뤼튼은 누적 가입자 수 60만 명을 돌파했고 누적 생성 단어 수는 180억 개, 국내 최대 생성 AI 모델을 보유하는 등 국내 생성 AI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체로 올라섰다. 지난 5월엔 아시아 생성 AI 컨퍼런스 'GAA 2023'을 열었고, 최근 1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 중이다.
돌이켜보면 프리A 투자 이후 뤼튼테크놀로지스는 다소 공격적인 지표로 목표치를 설정했었다. 일반적인 경우와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목표치였기에 단기간 내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지만, 회사는 이를 초과 달성했다. 뤼튼테크놀로지스는 글쓰기 교육을 시작으로 기술과 시장 트렌드를 빠르게 읽으며 현재 생성형 AI 통합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이 과정에서 피벗과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뤼튼테크놀로지스의 창업 당시 비전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창업 초기에는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한 서비스로 시작했으나, 글쓰기는 학생뿐 아니라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점과 생성형 AI 발전으로 글쓰기와 창작의 정의 자체가 재구조화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잘 반영해 창업 당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형태를 찾아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도전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이미 이뤄놓은 것이 많을수록 이를 내려놓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렇기에 스타트업은 비록 작은 조직으로 시작하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을 지금까지 지켜봐 온 동행자로서 매쉬업엔젤스는 앞으로도 뤼튼테크놀로지스의 여정을 함께하며 응원하고자 한다.